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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에 걸린 마을

처음 이 책을 꺼내 들었을 때 두 가지 착각을 했었다. 하나는 제목의 주문이, 길 잃은 두사냥꾼이 외딴 식당에 들어서자 옷을 벗고 몸에 소금간을 한 뒤 밀가루를 바르라는 등의 주문이 이어졌던,미야자와 겐지의 일본 단편소설 주문이 많은 음식점에서와 같은 주문인줄로만 착각했던 것이고 두번째는 황선미라는 이름에서 종북 논란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인물로 착각했던 것. 그분(?)이 동화도 썼었나? 그것도 조선일보 계열 조선북스에서? 황당한 상상이 꼬리를 물자 호기심에 꺼내든 것이 이 책이었는데 두 가지 착각이 미안해질 정도로 책이 재미있었다. 어쩐지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 내공이 대단하다 싶었더니만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국산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의 원작자라고 한다. 책을 펼치면 두 페이지에 이어진 지도 한 장이 나온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오스트리아, 스웨덴, 네덜란드, 벨기에 등등의 국명과 동화 속에서 봤음직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피터팬을 닮은 캐릭터가 보인다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피터팬이 이야기의 처음을 장식한다. 사람 없는 켄싱턴 공원의 스산함 가운데 피터팬 동상이 움직인다. 그리고는 피리를 분다. 동상이 움직인다는 것, 피리를 분다는 것역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유명한 동화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인셈. 이 책은 이렇게 여러 동화에 대한 오마주로 이어진다. 주인공 깜지는 건망증 작가가 잃어버리고 간 공책 속에서 튀어나온다. 정확히는 공책 속 그려진 쥐였지만 동화의 세계에서 뭔들 생명력을 얻지 못하랴. 독자들은 이제부터 깜지의 눈과 귀를 통해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피터팬과 공원의 요정들만 만난 것이면 간단한 일이건만 작가는 여기에 한 층 더 오마주의 깊이를 더한다. 그것은 바로 형을 잃고 슬퍼하는 어머니를 둔 소년 제임스의 등장으로 이뤄지는데, 이 제임스 소년은 바로 피터팬의 작가 제임스 배리의 어린 시절을 동화 속 인물로 등장시킨 것이다. 머릿말을 통해 작가는 그 자신의 이야기 속 건망증 작가임을 밝히고 있다. 건망증 작가라는 이름으로 이 책을 쓰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드러내고 있는 작가는, 자신이 바라던 대로 읽고 또 읽어도 될 만큼 책이 잔뜩 쌓여 있는 방에서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 하나 더 바람이 있었으니 그것은 자신이 좋아하던 작가들 그리고 그 작가들의 작품이 남겨놓은 장소들을 찾아가보고 싶다는 바람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어쩌면 낯선 이름일 수도 있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비아트릭스 포터 등의 이름도 이 머릿말을 통해 언급된다. 아는 사람은 아 그 작가! 하고 눈치를 챘겠지만 책을 읽던 중에 어쩌면 책 후반부 해당 동화 작가의 생애에 대한 설명이 있고서야 아 그 사람이 이 사람이구나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당을 나온 암탉으로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작가는 드디어 비행기를 타고 자신이 꿈꾸던 동화 속 작가의 세계, 그 작가가 살았던 마을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 여행은 건망증 작가 그리고 그 건망증 작가의 창작노트 속 깜지의 모습으로 한 편의 동화책으로 구성되어진다. 켄싱턴 공원에서 피터팬을 만난 깜지, 하지만 피리를 불어 요정들을 깨워야 하는 피터팬은 갑작스런 침입자 깜지 때문에 자신의 일이 방해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짧게 진행되지만 원작 피터팬과 그 외 많은 동화책 속 이야기가 생각나게 만드는 가운데 제임스란 소년이 등장한다. 공원의 꽃을 꺾어 피터팬과 요정들의 축제를 방해한 제임스, 하지만 제임스에겐 사정이 있었고 요정의 축제는 다시 이어질 수 있는 방도가 있었다. 자신의 몸보다 큰 옷을 입고 공원의 꽃을 꺾은 제임스 소년, 형 데이비드의 죽음으로 어머니가 상심하자 형의 옷을 입고 형처럼 행동하며 어머니를 달래주려고 했었단다. 꽃을 꺾어서 가지고 가려고 했던 것도 어머니의 웃음을 되찾아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형의 옷을 입고 있는 소년 제임스와 성장을 멈춘 피터팬이 서로의 처지를 공감하며 서로를 안아주는가운데 첫번째 에피소드가 끝난다. 그리고 깜지는 피터팬과 요정 팅커벨의 도움으로, 건망증 작가를 만나기 위해 하늘 위로두둥실 날아오른다. 일견 닐스의 신기한 여행이 떠오를 정도로 유럽 어디 하늘 위를 두둥실 날아 올라간 깜지와 공책은 피터팬과 그 요정 친구들의 도움으로 새로운 마을을 찾아간다. 이제 다시 작가님을 만나 작가님의 여행에 동행하게 된 깜지가 새로 발을 내딛은 곳은 비아트릭스 포터가 살았던 마을로, 건망증 작가가 만나고 싶어하는 티키 윙클 부인이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민박 아닌 민박을 하게 된 건망증 작가, 그리고 그런 건망증 작가와 함께 한 깜지는 혼자 놀고 있는 소녀를 만나게 된다. 아니 소녀는 혼자 놀고 있지 않았다. 꽃과 벌레, 이끼가 그녀의 친구였다. 소녀는 이방인 깜지와도 금방 친구가 된다. 비아트릭스와 만났던 깜지는 이어 티키 윙클 부인도 만나게 된다. 이 책의 저자가 만나고 싶어했다는 티키 윙클 부인은 사람이 아니었다. 티키 윙클 캐릭터에 대해서 잘 아시는 분이라면 너무나 반가워할, 그렇지 못한 분들이라고 해도 귀엽고 다정한 동화 속 모습에 흐뭇해질 것이다. 이렇게 이 책은작가와 작가의 대표작 속 캐릭터를 한 에피소드에 출연시키며 이야기를 진행시켜나간다. 유명한동화작가답게그 이야기 진행방식은 무척이나 동화적이면서도 세련되게 잘 짜여져 있다. 형의 옷을 입고 있는 제임스가 등장하는 편에서는 죠니 뎁과 케이트 윈슬렛이 출연한 영화 네버랜드를 찾아서를 얼핏 떠올리게 만들기도 했었다. 제임스의 슬픔, 피터팬의 애환 같은 것이 짧으면서도 잘 어울려지면서 마치 영화 네버랜드를 찾아서를 볼 때의 그 감동을 느끼게 해줬달까. 이야기는 이어서 삐삐의 마을, 피노키오의 마을, 안데르센의 마을 등으로 나아간다. 인어공주와 한스의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여행에서 돌아온 깜지의 편지를 거쳐 책 뒤편에 수록된 동화마을 여행정보를 볼 수 있다. 피터팬은 알아도 제임스 배리는 몰랐던 이들, 런던은 알아도 켄싱턴 공원을 몰랐던 이들도 이 동화마을 여행정보를 통해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게 된다. 앞부분에 실린 내용들 그리고 인물들이 뭐하는 인물들이었는지 왜 출연했는지 궁금했던 분들이라면 이 여행정보 파트에 실린, 사진 가득한자료들을 보며 무릎을 탁~ 치지 않았을까. 나 역시도 모르는 것이 꽤 많았었는데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이 자료들을 읽다보면 앞부분에 읽었던 내용들이 다시 한 번 감동적으로 느껴지며 새삼 황선미 작가의 필력에 감탄하게 된달까. 피터 래빗 시리즈의 작가 비아트릭스 포터는 또 어떨까, 그녀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그녀가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음을 황선미 작가는 동화를 통해 알려준다. 그렇게 작가와 동화 속 캐릭터를 나란히 등장시킨 이야기는 책 뒤편에 실린 자료들을 통해 더욱 큰 생명력을 얻게 된다. 삐삐의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과 그녀가 만든 삐삐 캐릭터에 관한 자료 역시 상당히 생생하다. 삐삐만큼이나 개구지게 혀를 내밀고 사진을 찍은 작가 린드그렌의 얼굴은 동화와 드라마를 통해 잘 알려진 삐삐만큼이나 생동감이 있다. 때론 슬픔을, 때론 외로움을, 때론 명랑함을, 때론 안타까움을 함께 하며 동화 속 캐릭터와 동화를 쓴 작가, 이 책을 쓰고 있는 작가, 그 작가가 가보았던 동화 유적지에 관한 여행 정보까지 함께 수록한 이 책, 동화를 좋아한다면 동화작가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 127페이지 정도의 책이지만 127만원(?)을 주고도 얻지 못할 동화나라 속해외여행의 묘미를 즐길 수 있으리라.

주문에 걸린 마을 은 건망증 작가의 유럽 동화마을 여행이라는 현실의 공간에 창작 노트 속 그림이었던 쥐가 동화 속 주인공들을 만나는 가상의 설정이 맞물리고, 여행기인 줄만 알았는데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꽃피우는, 지금껏 없었던 새로운 형식의 동화입니다. 어릴 적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었던 동화를 다시 읽어보고 싶은 부모와 명작을 새롭게 감상하고 싶은 아이가 함께 읽으면 좋은 작품입니다.

머리말
두근두근 여행 떠나자

첫 번째 여행
피터 팬, 피리를 불어 줘!

두 번째 여행
티기 윙클 부인의 선물

세 번째 여행
주문에 걸린 마을

네 번째 여행
뒷골목 피노키오

다섯 번째 여행
외톨이도 멋지다!

여섯 번째 여행
사라진 소포와 까만 쥐

일곱 번째 여행
깜지의 모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