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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그려낸 영혼의 결합 같은 관계가 아니면 타협하지 않을 작정인 앨리스. 실용적인 의미의 사랑이 아닌, 로망 가득한 사랑을 꿈꾸었다. 남들의 눈에 그럴싸하게 보이는 것에 신경 쓰고 자율적으로 무언가를 해내기보다는 모방을 선호하는 스타일이다. 유행 따라가는 것을 즐기고,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는 사람. 그게 바로 앨리스였다. 누군가는 그런 앨리스를 보고 낭만주의자, 몽상가라고 불렀다.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는 전형적인 여주인공이라고 손가락질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앨리스가 가진 일종의 꿈이었다. 자고로 꿈을 꾸는 것은 자유니까. 앨리스는 위대한 사랑 이야기에 감탄했다. 그 이야기에 담긴 필연성과 불가피성이 부러웠다. 이야기가 그럴싸하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모든 장면에 반드시 있어야 할 이유가 있었다. 과거 상처받은 기억들로 사랑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 앨리스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냉소적인 말투와 행동으로 방어막을 미리 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방어막을 꿰뚫어 본 전형적으로 유혹적인 이탈리아 남자처럼 구는 에릭. 짧은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며 앨리스는 완벽해 보이는 에릭에게 푹 빠져버린다. 그동안 쳐왔던 방어막이 무색할 정도로. 사랑과 연애에 냉소적이었던 태도는 온데간데없고 오직 사랑에 빠진 한 여자만 남았다. 앨리스가 지금 에릭을 사랑하는 것일 리가 없다면, 그녀는 아마 사랑을 사랑한 것이다. 그녀는 자기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확신하지 못했고, 자연히 외부에서 실마리를 찾으려 했다. 다른 사람의 견해와 다를까 자신만의 이야기를 마음껏 하지 못하는 앨리스. 비평가들의 펜에 휘둘리고, 주변 사람들의 의견에 동조하는 편이었다. 자주적인 모습은 연애하기 이전에 보였지만 생각해보면 그것 역시도 연애에 관심 없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한 차악을 택한 것이었다. 근사한 남자와 함께 있다는 것이 자존감의 원천이 되었고, 그렇게 에릭에게 맞추는 연애를 하다 보니 앨리스는 빠르게 지쳐갔다. 앨리스에게 그 남자는 여전히 수수께끼였다. 한편, 에릭은 불완전한 존재였다. 성공해야만 집안의 빚을 갚을 수 있었던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의사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버리고 은행가의 길에 뛰어들었다. 미래를 건 도박은 성공했지만, 불우한 가정환경은 모든 것을 다 이뤄 성공한 사람처럼 보인 젊은 성인에게도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한 예로 에릭은 강자를 존경했고 약자는 하찮게 여겼다. 감정은 미성숙했고, 완전히 자라나지 못했다. 그의 불규칙적인 행동 양식과 예측할 수 없는 감정 기복은 앨리스를 절망스럽게 만들었다. 그녀는, 자기 결점을 아는 것은 그 결점이 없는 것과 같다고 믿는 오류를 범했다. 자꾸만 어긋나는 에릭과 앨리스. 이거 과연 사랑일까. 우리는 사랑일까? 서로 간의 신뢰가 밑바탕이 되어야 하는 관계였지만 앨리스와 에릭은 그렇지 못했다. 사소한 것에도 불안함을 느끼고 주변 사람들의 말에 쉽게 흔들리는 앨리스였기에 에릭과의 관계가 어긋나게 되면 모든 불화와 책임을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자존감은 점점 낮아졌는데, 매번 비위를 맞춰주는 앨리스에게 에릭은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에릭. 서로에게 의지하는 부담과 리스크는 지고 싶지 않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그녀. 사랑과 애정의 책임을 부담스러워하는 그. 그녀는 ‘나를 찾고’ 싶었다. 여자란 무엇이며 남자란 무엇인지, 두 사람이 어떻게 소통할 수 있는지, 왜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지 알고 싶었다. 우리는 과연 사랑일까? 사실 정답은 쉽게 나왔다. 한때 사랑이었을지는 모르나, 그건 진짜 사랑이 아니라고. 누군가는 각자의 사랑 방법은 다르고 이건 그 다른 방법 중 하나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점점 관계 속에서 지쳐가는 앨리스와 에릭을 만났더라면 그런 말은 쉽게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건 사랑이 아니었다. 상대방에게 계속 퍼주는 것도, 상대방을 계속 기다리게 하는 것도 그리 좋은 사랑 방법은 아니라는 게 <우리는 사랑일까>에서 밝혀졌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굳은 신뢰 속에서 시작하지 못한 관계가 어떻게 끝나는지 지켜보면서 새삼 현실감 있는 알랭 드 보통의 글에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이 작가는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 직전에 읽은 작품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화자가 단 한 명이었다는 것을 기억할 때, 이번 작품인 <우리는 사랑일까>에서는 주 화자가 앨리스였지만 간간이 에릭의 시점으로 진행된 부분도 존재해 각자를 이해하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전작에서도 그랬지만 책에서 메인으로 다뤘던 커플이 여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는 게 약간 마음에 걸린다. 사랑의 고통으로 괴로워했던 그나 앨리스의 새로운 사랑이 그려진 작품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 멀리 간 이야기일까? 사랑을 통해 좀 더 성장하고 성숙해진 앨리스를 보면서 다시금 하게 되는 생각. 사랑 끝에는 이별이 있고 이별 끝에는 또 다른 사랑이 있다는 것.
연애의 탄생에서 결실까지, 남녀의 심리를 꿰뚫는 놀라운 통찰력.
유쾌한 연애술사 알랭 드 보통의 손으로 새롭게 빚어낸
독창적이고, 흥미진진하며, 지적인 연애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너를 사랑한다는 건 과 함께 사랑과 인간관계 3부작 이라 불리는 알랭 드 보통의 초기작. 자전적 경험과 풍부한 지적 위트, 남녀의 심리를 섬세하게 파고드는 서술로 알랭 드 보통 식 연애소설 을 선보이며 독자들을 매료시킨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여주인공의 시선으로 사랑의 과정을 풀어내며 다시 한 번 수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끌어낸다.

이 책의 주인공 앨리스는 사랑에 대한 갈망과 환상을 품고 사는 20대 중반의 커리어우먼이다. 사랑의 순결한 속죄양 을 꿈꾸는 현대판 낭만주의자 앨리스는 영화와 같은 로맨스를 꿈꾸지만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작가는 그녀가 꿈꾸는 낭만적 사랑과 그녀의 남자친구 에릭 사이에서 벌어지는 아슬아슬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이상적 사랑이 어떻게 현실 속에서 성숙한 사랑으로 완성되어 가는가를 간명하고도 유쾌하게 보여준다.

알랭 드 보통은 이 책을 통해 포물선과도 같은 사랑의 경과를 보여준다. 그는 우리가 어떻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발전시키며, 연애라는 과정을 통해 어떤 심리적 변화와 갈등을 경험하게 되는지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기후와 건축, 쇼핑, 종교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펼치는 그의 연애 이야기 는 사랑에 관한 색다른 접근과 함께 깊이 있는 철학적 사유의 시간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우리는 사랑일까

서장
현실
예술이냐 생활이냐
이야기에 대한 선망
냉소
파티
동정녀 잉태
사랑을 사랑하다
불확정성
촉매
섹스, 쇼핑, 소설
세탁 주기
가치 체계
상대방을 안다는 것
예측 가능성
사랑의 영속성
권력과 007
신성한 관계
에릭의 짐
왜 사랑받는가?
여행
독서의 문제
유쾌증
다이빙, 루소, 그리고 너무 생각이 많은 것
사춘기
여성 혐오
자기 자신에 대한 휴가
지역성
내가 어떤 사람이 되게 하나?
영혼
진실의 층위
의문
책임 떠넘기기
혼자만의 언어
오독
누가 노력하는가?
연애의 조각 맞추기
선언
초대
순교

옮기고 나서